MBTI는 재미있는 설정 놀이다. 사람의 성격을 분류할 수 있다는 직관에 입각해 4개의 축을 세워본 것이다. 이것을 만든 사람들도 그다지 진지하게 과학을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순수/광기/냉정/활발/우울 같은 느낌으로 그럴듯한 성격 세계관을 만들어보았을 뿐이다. 딱 그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하기에는 난 기독교 같은 기성 종교도 비슷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이래가지고는 또 다른 성역을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아직 성역이 될 정도의 사회적 권위를 얻지 못했으니 조금 생채기를 내고 비틀어도 사회적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전제로 MBTI를 가지고 칼춤을 춰본다. MBTI는 재미있다. 어젠가 나무위키에서 주기능 부기능 이런 얘기를 읽었는데 꽤 재미있다. 4개의 축이 동등한 게 아니라 위계가 있다. 네번째의 JP로 E와 I에 붙일 것을 정한다.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에서 사용하는 주요 기능을 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INFP의 경우 Ne와 Fi가 두가지 주요 기능이다. EI가 I이므로 Fi가 주기능, Ne가 부기능이 된다. 3, 4차 기능은 각각 부기능, 주기능의 반대인 Si, Te가 된다. 저것들이 다 뭔지는 둘째치고 그런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근데 "과학적" 측면에서는 MBTI보다 "비과학적"이라고 한다. 나무위키 피셜. 뭐가 중요한가? 재미있으면 된 것이다. 체계 내에서는 4개 축이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정했을 것이다. 근데 꼭 그런가? 4개 값을 결정하는 기저 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뭐 굳이 따지면 MBTI의 4개 지표와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겠지만 딱 맞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면 Big5라는 심리학 주류 성격 이론은 5개의 축을 상정하는데, 4개 축이 각각 MBTI 지표와 높은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한다. 그래봐야 0.5 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면 같은 변수는 아니고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 정도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것은 이렇다. 나는 스스로를 INFP로 identify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F나 P가 높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난 아마 N의 기저 요인이 너무 강한 것이다. 그것이 오버플로우 -- 넘쳐흘러서 F와 P로 나타난 것이다. 실제로 세번째 네번째 기저 요인은 T와 J를 나타내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은. 하지만 그 영향은 미미하고 N에 잡아먹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MBTI를 물을 때 INNN으로 답하기로 결정했다. 나의 F는 보통의 F가 아니라 N적 F, 강한 직관에 따라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F이다. 나의 P 또한 보통의 P가 아니다. N적 P, 강한 직관에 의해 매순간 결정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 P이다. 아마도 "그게 뭐야~ 이젠 MBTI도 아니잖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MBTI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이다. (일단은) 4개의 축이 서로 엉겨 상호작용하면서 입체적으로 발현되는 성격 체계이다. 예전에 대학글쓰기에서 만난 어느 인문대학 학생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론은 당연히 현실과 다르죠~." 정말 충격적인 말이었다. 모든 인문대생이나 연구자가 저런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쳐도 충격은 충격인 것이다.... 다행히 컴공에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모두 나처럼 경악한다.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론이라는 말의 무게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MBTI도 어딘가에서는 하나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MBTI가 하나의 이론이라면, 실험과 관찰을 통해 반박될 때 개선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더 복잡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어엿한 이론이 되고자 한다면 그리해야 한다. 정작 MBTI 신봉자들은 그런쪽으로는 별 생각 없겠지만.... 나는 더욱더 복잡하게 만들고자 한다. 아마 진실된 대칭성이 나타날 때까지 그리할 것이다. 일종의 Physics Envy, 물리학의 선망이다. 물리학 선망을 생각하니 아까전에 재미로 읽은 이기론 이야기도 생각난다. 이황과 이이가 잔뜩 키배... 붓배를 벌였다는 바로 그 유교 논쟁이다. 그걸 읽고 있자니 동아시아에도 제대로 된 형이상 철학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서양 고전 철학처럼 기독교적이미지의 진리를 선망하지도 않으니 더욱더 소화가 잘 된다. 또,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하나의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는 믿음이 아주 자연스럽다. 그나마 '이'가 진리와 비슷한 역할일텐데, 그것은 우리가 애써 추종하고 찾아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에 내재된 기본 원리와 같은 것이다. 진리는 힘겹게 찾아야할 보물섬이라는 느낌이라면, '이'는 아주 일상적으로 어디에나 있는 말하자면 풀꽃 같은 것이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제대로 공부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무게는 성경 공부와 비슷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인 성격유형론이 있다. 태음인, 소음인, 소양인 이런 거나 음양오행 사주로 어쩌구저쩌구 하는 것들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음양오행은 인간과 우주 그외 모든 만물의 공통적인 원리이니 이쪽도 다른 맛의 재미가 있는 셈이다. 우주의 원리로부터 당연하게 도출되는 궁극의 성격유형론...이라는 점에서 생각이 났다.
성격유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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