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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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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기를 두 편 썼다. 일기와 블로그는 다르다. 그것을 느꼈다.

언제부턴가 투명한 사람이 되고 다짐했다. 겉모습을 꾸며내는 것은 피곤하니까, 속모습을 드러내도 괜찮을만큼 갈고닦아 굳이 칠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그런 노력의 실천으로 블로그에도 이런저런 정신분석적인 글들을 썼다. 이제는 좀 정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도 축축 처지는 기질은 여전하지만 이젠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감정과 생각들을 설명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읽히기 위한 문장으로 짜는 과정이 다 그러한 단련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시 꾸미는 일에 복귀해야지 싶다. 약간 반투명하게 그을리고, 그림 같은 것도 그려넣고 해야겠다. 그렇게 완전히 나 홀로 있는 여유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들도 글로 풀어내는 일은 필요하다. 일기는 그러한 공간이다. 누구한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써본다. 그렇게 약 7년만에 일기장이 부활했다. 디지털로 쓰는 것은 너무 휘발성이 강하다. 딸깍 한 번에 모든 데이터를 날릴 수 있다. 일기란 아주 사적이고 부끄러운 것이라 몇 번이고 말소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그런 충동이 들 때 쉽게 실행할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래서 공책에 펜으로 쓴다. 디스크에 적힌 것은 `rm` 명령어로 한 번에 영원히 지워지지만 공책에 적힌 것은 지우기도 어렵고 버리면 다시 주워올 수 있다. 불에 태우기라도 하지 않는 한 쉽게 사라지지 않는데 설사 그런 결심을 한다고 해도 나 특유의 게으름으로 그 계획을 여러번 재고하여 실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일기를 쓰는 일이야말로 글이 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일기에 적히는 것은 꼭 숨겨야하는 일들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기는 블로그와 비슷한데 더 많은 것을 쓸 수 있다. 한편 블로그만의 특징으로는 여러 사람에게 빠르게 전해진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블로그는 알리고 싶은 것들을 쓰는 것이 좋다. 이 글처럼 내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내게 불투명성이 생기면 뭔가 매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없잖아 있다. 유튜브에서 보니까 다 드러내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드러내야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관심을 유발할 대상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건 평소에 작업을 쳐놔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얘기를 여기에 쓰는 것 자체가 이미 너무 투명한 것 같기도 하지만... 인터넷 보안 알고리즘이 다 공개가 된 프로토콜로 정보만 암호화하는 걸 보면 이렇게 써놔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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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중요한 아이디어 같은건 디지털화하기 꺼림직해서 수첩에 적는데 공감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