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고 느꼈다. 내가 뭘 알고 읽었겠냐마는... 재미없는 것은 재미없는 것이다. 내가 장르문학에 너무 익숙해져서 자극적이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는걸까? 만화와 영화만 보다보니 이미지 없이 이야기를 읽을 수 없게 되었나?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성문학, 비장르문학이란 원래 이렇게 심심한 것인가보다. 혹은 재미 밖의 사회맥락적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인가보다. 그렇다 치자! 그러니까 이 글은 내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단순히 나라는 사람이 이 소설들에는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여기에 공감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나는 오히려 김초엽이 좋다고들 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들어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아 그리고 이 글은 오로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만을 읽고 쓰는 것이다. 다른 소설은 재미있을지도 모른다. SF라는 장르가 안 맞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는 SF도 있다. 작가의 이름은 '셋하나둘은둘셋하나'. 이미 내 블로그를 읽는 사람들의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자주 꺼낸 이름이다. 이번에는 김초엽에 대조하여, 왜 셋하나둘은둘셋하나는 재밌고 김초엽은 재미없는지 고찰해본다. 무작정 시작하여 쓰면서 정리하는 글이라 정신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적어둔다. 간단히 말하면 김초엽 소설의 주인공은 기술이고, 셋하나둘은둘셋하나 만화의 주인공은 인물 -- 캐릭터다. 설정과 세계관만 소개하는 이야기는 재미가 부족하다. 김초엽의 <감정의 물성>이 그러하다. 이전에 인상깊게 읽었다고는 했지만... 읽을 때는 "흠... 그 정돈가?" 싶은 재미였다. 그저 어떤 신기술이 제품으로 나왔고, 그게 바이럴이 되고, 다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기술을 마주하는 그런 이야기다. 아무래도 슴슴하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 만화에서는 기술이란 배경이다. 아주 당연하게 그곳에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쓴다. 주민등록이 되어있으면 불사 시술은 의료보험으로 당연히 받는 거고, 정신질환은 당연히 신경 신호 조작으로 보정하고, 대통령 선거는 진작에 IT 기업들의 정치 인공지능 경쟁전이 되어있다. 낯설긴 하지만 그 세상에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밥만 축내는 사람도 있고, 가끔 퇴근길에 치킨을 사오면 일하는 사람도 노는 사람도 맛있게 뜯어먹는다. 그 치킨은 아마 합성고기 같은 걸수도 있지만 인물들은 신경쓰지 않는다. 룸메이트가 갑자기 낡은 몸을 버리고 새 몸으로 이식해서 돌아와도 그냥 보톡스 맞고 돌아온 정도의 감상이다. 낯선 세상이지만 익숙한 기분이다. 또 오타쿠의 말이 길어졌다. 정리하자면 두 작가의 작풍은 초점을 달리한다. 김초엽은 우리가 사는 익숙한 세상에 낯선 기술을 등장시킨다. 낯설어진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옛 사람들의 갈등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는 새로운 세상이 이미 익숙해진지 한참 뒤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온갖 휘황찬란한 기술이 당연하고 지루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꿈과 고민에 집중한다. 김초엽의 *단편*만을 읽었기 때문에 생긴 편견일까? 세계관을 소개하느라 김초엽의 이야기가 작아진 게 아닐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가 연재하는 (지금은 휴재인가? 자유연재라 공백이 길다) <창쾌한 지경씨>라는 네컷만화 시리즈가 있다. 이 만화는 뭐랄까... 두서가 없다. 모든 상식이 부정되어있는 세상이랄까... SF라면 SF다. 죽음도 불확실성도 모두 해결하여 한없이 지루해진 세상. 그러나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다. 그냥 이 작가는 세계관을 설명할 생각이 없는 게다. 그런 자잘한 건 극이 진행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지. 이런 불친절함은 그의 만화들이 가진 높은 진입장벽이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물과 이야기에 담긴 매력을 부각하는 전략이다. 언젠가 김초엽의 장편도 읽어보고 싶다. 장편에서는 세계관 소개 뒤에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인물과 이야기가 독자를 흡입하지 않을까?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의 작품 가운데에도 기술이 주인공인 만화들이 있다. 그런 만화들은 대개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한다. 마치 제품 소개나 역사 다큐멘터리처럼 설명만으로 만화를 구성한다. 생각해보면 그런 만화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내가 빠져든 것은 역시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과 불안과 갈등과 꿈이 넘쳐나는 이야기이다. SF적 설정들도 훌륭한 재미요소지만 어디까지나 조미료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SF란 말을 순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과학허구? 허구과학? 기술환상? 과학판타지? SF는 판타지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데 아 그렇지도 않나? 과학 이론에 대한 상상이니까 완전히 허구적인 설정은 아닐 수도 있다. 과학상상? 실은 판타지라는 말도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애매해진다.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정신병 같은 어감이 있다. 허구는 너무 가짜라고 깎아내리는 어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문화에 판타지라는 장르가 있나? 무협지도 결국 판타지적인 설정들이 많고, 홍길동도 도사였던 걸 생각하면 마법과 요괴 정도는 소설 속에서는 일상적인 소재였던 것 같다. 판타지라는 부류에서 장르적 문법을 찾아본다면 마법사 이야기, 모험 이야기, 영웅 이야기 등등으로 나누어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SF를 판타지로 퉁치기는 어렵겠다. SF의 장르적 특징을 생각해보면 과학상상이나 기술상상 정도가 맞겠지 싶다.
김초엽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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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끝의온실 2번 읽었는데 거기 인물들이 하나하나 제 안에 살아있습니다 영상화 된다고 하니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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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과 참글과 미리보기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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