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변명의 문장들이 끊임없이 떠오르며 그저 게으르고 외출하기 싫은 이 상황을 대변하려 하고 있다. 그럴 때는 모든 미사여구와 관점과 틀을 벗겨내어 현상에서 다시 시작해 맑은 정신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과 할 일을 규명하여야 한다. 나는 민주주의 국가 대한국민의 국민으로써 나를 대변할 입법권자 국회의원에 대한 선택권을 행사하러 나가야 하고 동생의 외출을 기해 열리는 가족 만찬에 나가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와야 하며 그럼에도 지난주나 다음주였다면 그저 집에 틀어박힌 채 쉴 수 있었을 수요일을 아쉬워하면서도 어제에 오늘 평일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중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학우들과 함께 기념하기로 한 계획이 무산된 것을 슬퍼하며 그래픽스 과제를 거의 다 끝내놓고 그것을 설명하는 보고서만은 도저히 쓰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아 자꾸만 미루어두었던 것을 이제는 마무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면서도 일단은 배가 고프고 꼴이 추레하여 씻고 밥을 먹는다는 최우선 과제에 직면해있다. 이제는 머리가 지끈거려서 절로 비명이 나오고 자꾸만 이어서 잠을 자고 싶지만 그래도 이불을 개는 첫단추는 맞추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하보면 오로지 데이터로 증명가능한 내 몸의 빙산의 일각만을 설명하려 했던 의사의 진찰결과에 메여 그래 기준치의 100배라는 수치가 나왔으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지 라는 너무도 편리한 생각을 핑계삼아 운동을 그만두어 만성적인 과제성 어깨뭉침이 도졌다는 점과 여태까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 그것을 하고 싶은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내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아왔던 나의 최중요 전략이 오늘 아침만은 제대로 작동하지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조리한 파라미터들의 텐서를 무작위로 만들어내 인간의 사고 능력을 동물행동학적으로 흉내내는 자연어 처리를 구현해야 하는 창통설 과제를 마주하면서 증명가능한 인간 사고 중심의 프로그램에 대한 선호가 이미 나의 정체성으로 굳어져가면서 도저히 이것만은 나의 존엄성을 걸고 결코 좋아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지금까지의 나의 최중요 전략과 상충하니 오늘따라 <보석의나라>를 보며 느꼈던 정체성의 보전과 능력적 성장의 트레이드오프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한 시간 뒤의 외출하는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하기가 싫으니 앞날에 대한 무조건적 공포로 제목을 지을까하다가 아무래도 앞날이라 하면 최소한 5년을 바라보는 기존의 언어체계를 고려하면 나의 지근 미래에 대한 비상식적 공포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어 그렇다면 현상만을 바라보자 하니 그저 나가기 싫은 게으른 한 사람만이 방 안에 앉아 글을 쏟아내고 있었다. 바로 1시간 후의 미래도 머리가 지끈거려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5년 10년 뒤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 가늠해보면 그것은 결단코 불가능하고 설사 가능하다한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내가 정말로 이 고통을 감수해서까지 미래란 가치가 큰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데 나는 결국 계속해서 미래로부터 도망만 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는 작년 광주에 아무것도 모른채로 도착하여 그곳의 맛있는 음식들과 재미있는 장소들을 1박2일만에 밀도있게 탐색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숙소와 차표만은 미리 준비해야지라는 것을 억지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예매하게 되는 나의 거짓된 방랑벽을 믿고 앞으로의 인생도 때가 되면 어떤 내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내가 등장하여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준비하고 혹여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헤매는 것 자체를 유랑처럼 생각하여 즐길 수 있겠지 넌지시 생각해본다. 이제는 일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정리하니 조금은 머리가 맑은듯하다. (후일담) 실제로 머리가 아픈 것이었다. 내가 붙인 병명은 꾀병. 하지만 (추정키에) 과학적인 병리 작용이 있었던 것 같고 실제로 간 기능이나 체력적인 문제가 있어 머리가 아팠던 것 같다. 꾀병과 이불갇힘은 인과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번 건은 꾀병이 원인이고 이불갇힘이 결과였던 것 같다.
나가기싫은날
왼손잡이해방연대,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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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다보니 아무것도 아닌것에 괴로워하고 언제까지나 도달하지 못하는 미래의 자신에게 모든 일을 떠넘긴채 도망치기 바빴던 제 자신을 보는것만 같아서 참을 수 없는 억울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찰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시간ㅡ현재ㅡ에서 끊임없이 동기와 비용 사이에서 무너지는 뇌내 균형을 되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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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자기 닌자가 나타났다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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