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해방연대 아지트

사용자 확인중...

언어와 철학

왼손잡이해방연대,

49

1

언어철학이란 걸 21년도에 처음 만났다. 대학글쓰기 과제 때문에 읽은 책이 있었는데, 독일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한국인이 독일어로 써서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었다. 구조가 느슨하다는 인상을 주는 읽기 힘든 책이었다. 구조와 별개로 하이데거에게서 내려오는 언어철학이라는 주제가 참 별로였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가 언어철학이라고 부르는 사조를 정의해보자면 일상의 언어 생활에서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관찰하여 탐구하는 것이다. 그러한 접근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자 자신이 일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언어 자체가 그가 생활하는 문화권에 한정된 지역적 세부사항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영어에 “blow up one’s mind” 같은 말이 있다한들 “우리는 놀라운 것을 볼 때 머릿속의 생각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저 말과 비슷한 한국어 관용표현은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내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정도가 되겠지만 뉘앙스는 전혀 다르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아주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풀 때 뇌에 압력이 가해지는 것을 경험한다”라고 말할 수 없다.

급조한 예시다보니 그럴 수 있지 않나 싶지만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생각의 열차라는 표현이 있다”라든지 “호기심은 눈앞의 문제를 쫓지만 궁금한 것은 마음 속에 오래 남는다”라든지 하는 말은 잘 와닿지가 않는다. 이런 문장을 읽을 때는 원래의 영어 단어가 뭐였을까를 상상해야한다. 아마 curious와 wonder였을까? 이런 문장을 보면 화가 난달까, 직접 느낄 수 없는 저들만의 미묘한 느낌에 질투가 난다. 화를 내기엔 또 거시기한 게 이 사람도 비-인도유럽어족 화자의 어휘 체계까지 고려해서 인류보편적 진리를 세우고자 한 게 아니라 그냥 자신과 비슷한 주변 사람들이 적당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캐주얼하게 꺼낸 것이기 때문이다. 화는 어린 투정이 되어 머릿속만 맴돈다.

번역가도 이 점을 고려해 적어도 영어의 원래 단어를 병기해주면 좋지 않을까. 영어를 배워서 한국어 자막과 영어 말소리를 함께 읽고 듣다보면 그 미묘한 표현의 차이를 알게 되고 번역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언어만 고립시켜 일대일로 완벽하게 번역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언어와 연결된 문화적 맥락까지 같이 의역해야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있다. 문장의 각 부분의 미묘한 뉘앙스나 운율, 심상이 중요하다면 번역은 더욱 어려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wonder-궁금해하다 / curiosity(?)-호기심은 적절한 번역이었을지 묻고 싶다.


목록

댓글이 없습니다